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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도서 리뷰

보통 아닌 SF단편집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이경희

by 베이지뷰 2022.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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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었던 SF소설 중 가장 새로웠던 이경희 작가의 소설집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후기

 

여러 전문가(?)들이 책을 추천해주는 블로그에서 본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처음엔 뭔가 제목부터 SF 느낌이 가득하고 표지도 통통 튀는 색감이 귀여워서 끌렸다. 내용이 궁금해져서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책 소개를 찾아보니 "우리의 오늘을 구원할, 다정한 우주에서 온 이야기들"이라고 쓰여 있어서 더 궁금해졌다. 심지어 2020 SF어워드 대상 수상작가라니! 음, 이건 읽어볼 만하겠다 싶어서 독서토론 책 후보로 추천했고 다들 비슷한 생각으로 투표했는지 결국 이 달의 독서토론 도서로 선정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소개

너의-다정한-우주로부터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다산책방 '오늘의 젊은 문학'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다.  

 

  •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
  • 우리가 멈추면
  •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 바벨의 도서관
  •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
  •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

이렇게 총 6개의 소설로 구성되어있는 이경희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모든 이야기들의 주제가 다채롭고 각각의 특징이 강해서 이야기별로 후기를 남겨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굉장히 유쾌한 블랙코미디 같은 소설이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좀비처럼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인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살아 돌아온 조상님들은 끝없이 "라떼는~"을 외치며 일명 '꼰대짓'으로 현대의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단순히 좀비처럼 죽이려고 해도 죽지 않고 끝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조상님 앞에서 현대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를 타개해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조상님들을 해치우기 위해 마련한 방법이란 것이 정말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데 이 소설의 가장 재미있는 요소중 하나라 스포 방지를 위해 비밀!

이야기 속 조상들이 뱉는 말들이 그저 텍스트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명절날 온갖 친인척들에게 둘러싸여 잔소리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적나라하다. 그래서 공감의 헛웃음이 나오고, 아주 읽기 쉬운 현실 언어로 쓰인 글이라 더욱  단숨에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멈추면>

행성 간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먼 미래. 운송회사의 노동자들은 과도한 업무량과 처우개선 등을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에 이르게 된다. 노동조합의 대표, 사측의 변호사, 그보다 더 위의 정치인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 사실상 배경만 미래일 뿐, 지금 현재의 문제를 담은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이 아주 중요한 대사로 나오는데 글의 마지막 자락에서는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인상 깊은 이야기였다. 다른 소설들보다 유독 배경 설명이 잘 그려져서인지 머릿속에서 마치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제목부터 어려운데 내용도 다소 어렵다. 사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하고 소재도, 주제도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이를 풀어나가는 글과 단어 선택이 조금 어려운 것 같다. 함께 독서토론에 참여한 친구들은 이 글이 '난해하다'라고 표현했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뒤엉킨 세계를 그리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엔 반전도 있는 소설이었다. 이야기의 설정 상 이해하기 어려운, 아주 입체적인 배경 설명이나 장치들에 관한 표현들이 낯설게 다가오기 쉬운 것 같다. 나는 원래도 이상한 상상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mbti N인 사람) '아주 원초적인 인간의 욕구와 이 욕망들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벌어질 일'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고 마지막에는 살짝 소름이 돋기도 했다.  

 

<바벨의 도서관>

어떤 면에서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와 결이 유사하다. 이 소설에서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인데 각자의 존재 이유와 목적성이 확실한 인공지능들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중에 묘하게 인간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도 있고 정말 100% 명령어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로봇 같은 캐릭터도 있었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오르기도 하고 이게 과연 먼 미래일까? 하는 생각들이 들기도 했다. 점점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고 있는데 과연 미래에는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미래의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인간이 필요하긴 한 것일까? 등 정말 평소에는 하지 않는 다양한 상상을 해보게 되는 글이다.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

이 소설은 개인적으로 첫 번째 이야기인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과 비슷한 감성의 이야기라고 느껴졌는데, 지금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발칙하고 독특한 소재라는 요소가 유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은 한 회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인물이 회식자리에서 우연한 사건을 통해 회사 직원들이 일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외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에 대처하는 이야기이다. 시작부터 회식자리에서의 갈등 상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대화나 주인공의 생각들이 너무나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이라 공감하며 읽게 되고 뒤이어 벌어지는 엄청난 상상의 나래에 유쾌하게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도 그렇고 이 소설도 그렇고 너무나 솔직한 풍자가 자꾸 실소를 터지게 만드는 기분이랄까? 분명 소재는 특이했지만 이야기의 배경이 친숙하다 보니 받아들이기 수월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아주 독특한 영상미의 유쾌한 SF영화 한 편을 본 느낌!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

제목 옆에 별 다섯 개를 단 이유는? 그만큼 가장 매력적인 글이었기 때문!

우선 이 이야기는 정원이라는 주인공의 시선을 담고 있다. 하나, 은하와 함께 지내던 정원은 은하가 불의의 사고로 떠난 이후 은하를 그리워하며 떠나버린 하나를 찾아 헤맨다. 언제든 원하는 시간대에 정착할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정원은 자신의 사랑이라 믿는 하나를 찾아 끝없는 미래로 떠나며 하나와의 시간차를 좁히기 위해 애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을 만나기도 하고 하나와 재회, 이별을 되풀이하기도 하고, 수많은 시간들을 보내며 정원이 느끼는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나 순식간에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이기에 최대한 스포를 배제하고 축약해서 글을 쓰자니 이 정도의 줄거리. 

 

이 마지막 소설에서 이 책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된다. 보통 독서토론을 위한 책을 읽을 때는 인상 깊었던 구절에 표시를 해가며 읽는 편인데 앞의 가벼운 이야기들에서는 한 페이지도 표시하지 않은 글이 있었다면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에서는 정말 많은 부분에 표시를 해두었다. 한 문장이 마음에 콕 박히는 경우도 있었고, 주인공의 감정이 무겁게 와닿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후기를 읽어보니 작가는

이 작품을 쓰고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한동안 다른 글을 쓰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했을 정도

였다고 한다. 내게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소설이었고, 꽤나 두꺼운 책 한 권을 읽는 내내 조금은 아리송했던 부분들이 한 번에 해소되는, 그만큼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는 전체적으로 유쾌함 한 스푼이 들어가 있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쉬이 읽히는 글 사이에 SF소설다운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까지 정말 다채로운 글들을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때론 가볍게 읽히다가도 한 번씩 턱 막히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아주 묘한 책이라 독자의 취향을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독서토론에서도 호불호가 꽤나 갈리는 책이었다. 

나는 비교적 최근에야 SF 장르를 접했는데 그간 읽었던 몇 권의 책들과는 확연하게 결이 다른 글이라 새롭고 흥미로웠다. 한편으로는 내가 SF 장르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아, SF가 이렇게나 자신의 상상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넓은 스펙트럼의 장르인 거구나'하는 깨달음을 느꼈달까?

마지막 이야기가 너무나 감명 깊고 매력적인 글이라 마무리가 더 좋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ㅎㅎ

아무튼 읽을 땐 조금 아리송했지만 자꾸 곱씹어볼수록 더 기억에 남는 책이 된 것 같다. 

 

상상의 끝까지 가보고 싶을 때, 조금 다른 장르의 책을 읽어보고 싶을 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구매링크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이경희 소설, 다산책방,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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